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칼럼·기고

‘문제는 노래가 아니라 길이다’ – 김호중 소리길 논란에 부쳐

김천시민일보 기자 입력 2025.05.27 15:55 수정 2025.05.27 16:06

길에는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걷는 이에게 목적지를 제시하고, 그 길을 만든 이에게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길은 그저 누군가의 흔적을 과하게 포장한 비탈진 산책로일 뿐입니다. 지금 김천시가 조성한 ‘김호중 소리길’이 딱 그렇습니다.

 

김호중 소리길은 마치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출근하라며 ‘네가 좋아하는 가수잖아’라고 말하는 행정의 무심한 배려처럼 느껴집니다. 길을 걷는 시민에게는 감동이 아닌 당혹을, 세금을 낸 시민에게는 공감이 아닌 괴리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 길은 ‘음주운전’과 ‘학교폭력 의혹’이라는 짐을 짊어진 한 연예인의 이름을 앞세운 길입니다. 물론 사람은 과거의 실수를 극복할 수 있고, 사회는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회복과 성찰의 과정은 조용히, 겸손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여기 그의 이름을 박자”는 식의 일방적인 명예 회복 퍼포먼스로 강행되어선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학교에서 학폭으로 징계를 받았던 학생이, 졸업 후 유명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 학교 교문에 ‘OOO 명예교문’을 세운다면, 그 시절 피해자는 어떤 마음일까요? 김호중 소리길은 바로 그런 불편한 상징입니다.

 

김천시는 시민들과 제대로 된 공론화의 절차도 없이 이 길을 조성하며 연예인의 인기를 빌려 도시를 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초 없이 세운 탑은 결국 시민의 조롱 위에 선다는 말처럼, 이 길은 지금 시민의 정서 위에 무례하게 놓여 있는 형국입니다. 더구나 매년 수억 원에 달하는 유지 보수 예산은 ‘공감 없는 세금 낭비’로 비판받기에 충분합니다.

 

길은 사람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그 사람의 삶과 철학을 되새기게 됩니다. 김천시가 진정으로 기억할 만한 인물을 기리고 싶다면, 지역을 위해 헌신한 시민의 이름을 새기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로에 세금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호중 소리길은 이제 길의 본래 목적과 상식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길은 시민을 위해 있어야 하고, 시민이 걷고 싶어야 진짜 ‘길’이 됩니다. 이 길은 그저 유명인의 ‘과거’ 위에 억지로 덧칠한 ‘미래의 흔적’일 뿐입니다. 이제 묻습니다. 당신은 이 길을 걷고 싶습니까?

 




저작권자 김천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