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에는 ‘무타구치 렌야’라는 전설적인(?) 장군이 있었다.
그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수행했으며 중국에서 근무할 당시 노교구 사건에 참여하여 중일전쟁까지 확대 시켰고, 중일전쟁 이후 동남아 전선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미얀마를 통해 인도로 진격하는 임팔작전을 진행 하였으며, 병참과 보급에 문제가 있어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참모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시켜 작전에 투입된 6만 5천명의 일본군 군사 중 5만 명을 몰살 시키기도 한 장본인이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후 무타구치 렌야 역시 전범으로 체포가 되었으나, 임팔작전의 실패 등 오히려 연합군을 위해 활동한 그동안의 다양한 공로(?)가 인정되어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 되었다.
그는 그동안의 자신의 무능함과 함께 임팔작전의 무모함이 증명된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작전은 정당했고 무능한 부하들 때문에 실패했다’는 변명을 계속 하였다.
김천의 '3대 기적'이라는 '혁신도시 유치'와 'KTX 역사 유치', 그리고 '전국체전의 유치'는 그 당시 김천의 시세(市勢)로 봐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민선 초대 박팔용 시장은 선두에서 공무원들을 진두지휘했고 믿고 따라준 공무원들의 노력으로 불가능 할 것만 같았던 일들을 하나 씩 성공시키며 수십년간 침체된 김천시가 다시 재도약 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에겐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절대 자신의 지시를 따른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고 설령 사업을 진행하다 잘못되어도 모두 자신이 관리 감독한 것이라며 자신이 책임을 졌다는 것이다. 그런 신뢰가 큰 밑받침이 되어 직원들은 그의 지시를 열심히 따랐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 필자는 생각 한다.
최근 지역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며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직원들에게 전가하려는 한 지역의 지도자의 이야기가 들린다.
잘되면 내가 한 것, 잘못되면 니가 알아서 한 것이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자신은 꽃길만 걸을려고 하고 부하들은 희생양으로 삼거나 사지로 몰아넣는 리더라면, 누가 그를 믿고 따를 것이며 과연 얼마나 충성을 하겠는가?
지도자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 할 수도 있는 막중한 자리이며, 구성원의 역할 제고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책임감은 무엇보다도 지도자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주어지는 혜택만 누리며 자리만 탐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말을 들려주고 싶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의 책임이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