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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완장과 죄값

김천시민일보 논설위원 기자 입력 2021.05.26 15:21 수정 2021.05.31 23:42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카포들은 그들과 피를 나눈 동족들에게도 그들이 충성했던 독일에게도 모두 공공의 적이 되었으며, 카포였던 신분이 드러나 린치나 살해를 당하는 등으로 그동안의 행위에 대한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유대인 수용소 안에는 카포라는 직책이 있었다.

 

마치 일제시대 때 완장을 차고 동족을 못살게 굴었던 앞잡이 처럼 카포는 같은 수용자 신세였지만 수용소 내 다른 수용자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일반 수용자에 비해 조금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었다.

 

독방 사용과 좀 더 나은 음식 그리고 수용자를 굶기거나 폭행하는 등의 통제 할 수 있는 제한적인 권력을 더 연장 받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정해주는 독일군에게 인정 받기를 원했으며, 그래서 동족들을 더 무참하게 짓밟는 일에 경쟁적으로 앞장을 서는 바람에 훗날 카포의 악랄함은 독일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는 수용자들의 증언이 많았다.

 

요즘 일부 언론들의 행태를 보면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카포가 연상된다.

 

시민과 약자의 편에서 대변하고 불의와 부정에  저항하며 누구보다 정론직필 해야 할 언론들이 공익을 위한 본연의 임무는 버려두고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권력을 열심히 찬양하고 홍보해주며 그들은 위한 변명까지 대신해 주는 등 권력에게 경쟁적으로 충성하고 있는 것 같다. 

 

권력의 잘못을 비판하는 시민들과 함께 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시민들을 협박하고 고소, 고발하며 권력자를 위한 대리전을 치뤄주고 있는 모양새이다. 마치 팔꿈치에 완장을 차고 동족에게 악랄하게 굴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카포처럼...

 

언론의 양심을 버려두고 권력의 주구 역할을 하며 그들은 권력으로부터 무엇을 얻어 갈까?

 

권력자가 주는 부역의 댓가인 완장(작은 권력)과 빵(돈)에 길 들여져 같은 동족이자 수용자들을 짓밟으며 자신들의 행위가 곧 법이고 정의인냥, 수용소라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자신보다 더 사회적 약자들한테 악랄하게 설쳐대던 그들은 나중에 어떻게 됐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카포들은 그들과 피를 나눈 동족들에게도 그들이 충성했던 독일인에게도 모두 공공의 적이 되었으며, 그들의 과거와 행위를 숨기기 위해 온갖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동족의 목떨미를 물어 뜯으며 악랄한 행위를 했던 카포였던 신분이 발각되어 린치나 살해를 당하는 등으로 그동안의 행위에 대한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되었다. 

 

또한 나치 전범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스라엘 모사드의 표적이 되어 암살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1950년 이스라엘은 나치와 나치 협조자들을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었고, 이 법을 바탕으로 1951년부터 1964년까지 약 40건의 기소를 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의 동족이었지만 동족을 죽이고 핍박한 카포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부역시킨 나라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도 1968년 판결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카포로 활동하며 189건의 살인을 지시하고 몇 건은 실제로 행한 카포에 대해 평생을 사회와 격리시키도록 종신형을 내리기도 하였다.

 

유대인 수용소의 참상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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