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패망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 독일의 소련 침공일 것이다.
독일이 서부전선에서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소련 침공 또한 조기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며, 상황을 오판하고 소련을 침공한 독일은 결국 늪에 빠져 긴 시간을 소비하며 지루한 소모전으로 인해 더 밀어 넣지도 그렇다고 빠지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병력과 자원은 고갈되어 갔고, 막대한 소모전으로 진이 빠진 채 소련과 연합군에 의해 동쪽과 서쪽,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면서 결국 히틀러는 자살하고 독일은 패망하고 말았다.
만약 히틀러가 성급하게 소련을 침공하지 않고 영국을 함락시키고 다시 체력을 비축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난 후, 여유를 가지고 차근 차근 계획을 세워 다시 소련을 침공 했었다면 세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도록 결정적인 오판을 한 원인으로 동부외인군이라는 정보기관의 수장이자, 현대의 첩보수집 및 정보분석의 종합시스템을 구축한 ‘라인하르트 겔렌’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겔렌의 특징은 누가 들어도 그럴싸한 계획, 과정, 예상성과 등을 깔끔 명료한 언변으로 듣는 이가 솔깃하도록 포장해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실상은 그의 계획과는 괴리가 아주 많았다.
그런 그의 능력이 모두 들통이 났고 나치 독일이 어려움을 당하는데 많은 일조를 했음에도 그런 그가 나치 정보기관의 핵심이 될 정도로 히틀러의 곁에서 승승장구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정보기관의 수장답게 정책결정자에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수준 높은 실질적 정보의 구체적 전달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책결정자의 의중을 간파하고 그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마치 입안에 혀처럼 해주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내심 소련 침공을 마음먹고 있을 때, 소련은 덩치 큰 껍데기일 뿐, 전쟁을 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며 강하게 치면 금방 무너질 것이라며, 히틀러가 오판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현대의 사회생활에도 이런 교훈은 통용된다. 상사에게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상황이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보고서 잘 쓰고 줄 잘 맞추며, 윗사람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거기에 맞춰 상황을 조작하고 정보를 왜곡하는 이들.
그들이 득세하고 활개를 친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던 독일이 상황을 오판하며 소련으로 전장을 확대하는 등의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무너지듯, 스스로 그렇게 참담하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입안에 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중용하고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을 사회공동체의 정책결정자로 두고 있다면, 그래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결정을 수시로 일삼는다면 그 사회공동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독일 국민이 겪었던 그 비참함과 고통처럼, 그런 리더를 둔 공동체의 구성원들 또한 아마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며, 결국 그런 리더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믿고 맡긴 그들은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도 혹독하고 값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