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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권력의 그림자, 그리고 쓴소리의 힘

김천시민일보 기자 입력 2025.07.08 10:26 수정 2025.07.08 10:34

-권력 옆엔 어느샌가 그 옆엔 “잘 하셨습니다, 폐하!”만 반복하는 자들이 둘러앉게 마련.
-정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 거세지고, 눈앞에 아첨이 넘쳐 나.

권력의 옆엔 언제나 향기로운 꽃이 아니라, 고개를 조아리는 아부와 아첨이 먼저 피어납니다. 

권좌에 오른 이들이 처음엔 민심을 외치며 출발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샌가 그 옆엔 “잘 하셨습니다, 폐하!”만 반복하는 자들이 둘러앉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 권력의 시계는 거꾸로 돌기 시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한 뒤, 어떤 말도 거슬리게 들리면 벽에 가두고 입을 막았습니다.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진언은 “역적이 성문 안으로 들었습니다”였고, 그것은 그의 말년을 향한 첫 곡이었습니다.

 

조선의 연산군은 어떤가요? 처음엔 ‘성군’이 되겠다고 의욕에 넘쳤지만, 곁에는 오직 그의 심기를 맞추는 이들만 남았습니다. 직언을 하던 사관과 신하들은 유배되고, 궁궐은 연산군의 기분을 맞추는 무희와 시종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결과는? 조선 역사상 가장 처참한 폭정과 폐위, 그리고 백성의 분노였습니다.

 

현대 정치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참모들은 “잘 수습될 겁니다”라며 상황을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결국 진실을 외면한 권력은 백악관의 문을 자발적으로 떠나야 했고, 미국 역사상 유일한 자진 사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남겼죠.

 

우리에게 익숙한 예도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기 전, 직언하는 이들은 하나둘씩 청와대 밖으로 밀려났고, 최측근이라던 자들은 그녀에게 진실 대신 환상만을 보고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대신 ‘측근과의 담합’이 국정을 대신하자 결국 광장은 촛불로 불탔습니다.

 

권력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쓴소리는 귀에 거슬려도 몸에는 이롭다.”

마치 쓴 약이 병을 낫게 하듯, 거슬리는 말일수록 그 안에는 국민의 불만과 미래의 위기가 담겨 있습니다.

 

권력은 늘 사람을 시험합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 거세지고, 눈앞에 아첨이 넘쳐납니다. 그때, 직언을 하는 참모 하나, 국민의 소리를 듣는 귀 하나만 곁에 두어도 권력은 오래도록 빛을 냅니다.

 

윤리와 민심이 아닌 아첨과 기만으로 권력을 지키려는 이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언제나 초라합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아니, 똑같은 실수만 반복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쓴소리를 내쫓고, 달콤한 말에만 취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귀로 하는 예술입니다.

민심을 들을 귀, 비판을 새길 귀, 그리고 아첨을 걸러낼 귀.

이 세 가지를 지닌 자만이 권력을 품되, 권력에 오래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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