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시민들의 환경권과 생명권이 걸린 SRF(고형연료) 소각 문제를 두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중적 태도가 지역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 환경단체 위원장은 과거 모 기업의 SRF 소각 시도에 대해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대했고, 해당 기업에 대해선 공개적인 성명을 내고 시민들과 함께 격렬한 저항에 앞장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또 다른 기업의 SRF 연료 사용 및 소각 추진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해당 위원장은 직접 SNS에 글을 올려 “이곳은 연료를 바꾸는 데 협조했고, SRF로의 전환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글을 게재하며 옹호하고 나섰다.
이쯤 되면 시민들의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같은 SRF인데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가?
반대의 기준은 과학인가, 감정인가? 아니면... 이해관계인가?
그 기업만큼은 왜 유독 감싸고 도는가?
시민의 생명보다 우선되는 그 기업의 '무엇'이 있나?
이 장면은 마치 『한서(漢書)』에 나오는 장자몽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두 아들이 같은 죄를 지었음에도, 편애하던 둘째는 감싸고 장남은 엄벌에 처한 장자몽.
백성들은 말했단다.
“죄는 같고, 판단은 다르니, 사랑이 판단을 가른다.”
시민들은 묻고 싶다.
SRF의 유해성은 장소나 기업의 이름에 따라 달라지는가?
편향된 감정과 특정 기업에 대한 호불호가 정책 판단을 좌우하는 것이 정당한가?
우리는 지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과 상식의 문제 앞에 서 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위선적 선택과 편애는 결국 시민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 환경을 지키겠다는 명분 뒤에 숨은 '선택적 정의'는 결국 가장 위험한 오염일지 모른다.
시민들은 이제 묻고 있다.
"정말로 SRF가 문제였던 것인가?
아니면, 누가 날 위해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