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폐사지에는 찬바람만 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쇠창살속에 갖혀있던 부처는 찾아 온 나그네가 반가웠던지 쓸쓸한 미소로 반깁니다
저는 아직 석탑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문화재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면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은 예술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국보 99호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동탑 기단에 음각으로 자경
6㎝의 행서로 새겨진 글씨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탑의 건립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천보 17년(경덕왕 17)에 조문왕후, 경신대왕의 이모 모씨의 외척인 영묘사의 언적법사 등 3인의 발원으로 세웠다’고 한다[二塔天寶十七年戊戌中立在之 娚姉妹三人業以成在之娚者零妙寺言寂在師旅□□ 姉者照文皇太后君嬭在旅□□妹者敬信大王嬭在也]. 탑명에 보이는 ‘재지(在之)’, ‘재려(在旅)’, ‘재야(在也)’ 등은 이두문(吏讀文)이라고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저렇게 본래의 자리를 떠나 엉뚱한 곳에다 자리를 잡은 문화재가 어디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뿐일까요? 수 없이 많겠지요.
전세계 사람들이 즐겨찾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도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약탈해간 문화재가 넘쳐 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헤아릴 수 없는 문화재가 무단 반출되어 일본으로 흘러갔지요.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를 겨우 모면하여 동탑은 1916년, 서탑은 1921년에 각각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스런 일이지요.
하지만 저곳에 계속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몇년전에는 프랑스로 넘어 갔던 외규장각 도서를 5년마다 임대를 갱신하는 형식으로 되찾아 온 경우도 있었구요. 지금도
해외에 있던 여러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아 갔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기는 합니다.
저는 늘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타국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는 당연히 원래의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 국내에서도 자리가 뒤바뀐 문화재는 당연히 원래 있던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간혹 "같은 나라안에 있을때는 관리를 잘하는 곳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 는 수도권 중심의 논리를 펼치는 이상한 문화재 전문가들도 있다지만, 이제는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모든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려 보내야 합니다.
서기 758년 신라 경덕왕 17년에 갈항사에다 동·서 석탑을 세울때는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맞춰서 높이와 거리까지도 계산을 했을텐데, 다른 지역으로 옮겨다 세우면 과연 그곳의 자연과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요? 전혀 어울리지를 않습니다.
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99호 "갈항사 동·서 석탑" 이제는김천의 갈항사지로 돌아와 다시 우뚝 서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