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경제사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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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 만큼 끔찍한 위기였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난리통이었고 많은 대기업들이 부도처리 되었으며 원청의 부도는 하청기업의 연쇄 부도로 이어져 자살자가 속출했고 신용불량자가 대량으로 양산되었으며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길거리에 넘쳐났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이혼율은 역대 최대였고 아기들을 유기하는 일도 빈번했었다.
살아 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고 우리나라에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된 것도 IMF가 그 시발점이었다.
노숙자가 길거리에 수만 명이나 발생되었던 난리통이 벌어진 1997년은 악몽 그 자체였다.
기업과 가계, 개인의 대출 금리가 30% 대로 치솟아 경매로 집을 잃거나 기업이 도산하고 가계는 파산하는 일이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이나 퇴직금 미지급 등이 발생하여 노동청에 고발이 되어 경제사범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대표자들이 엄청나게 나오게 된 것이다.
2025년 1월 29일 현재 금리가 개인신용도와 기업신용도에 따라 다르나 기준금리에 가산금리가 적용되면 4.5% 정도가 되는데 갑자기 30%로 금리가 폭등한다면 이자 부담에 견뎌낼 기업과 가계가 있겠는가?
그래서 IMF환란이나 금융대란, 금융사태라고 부르는 것이다.
IMF 사태는 사실상 1994년부터 서서히 진행되었고 이때부터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들과 개인의 연체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대폭적인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여 곪고 곪아서 터진 것이 결국 1997년 11월 이었다.
1997년 11월을 전후로 신용불량자와 대규모 경제사범들이 양산되어 정부에서 신용불량자 사면을 대대적으로 단행하기도 하였었다.
그때 노동자들을 데리고 기업을 운영했던 한 후보의 전과도 이런 사정으로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정국불안과 함께 금융위기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 지고 있어 큰일이다.
부디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잘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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